오프닝 해석
영화는 뉴스브리핑으로 시작됩니다.
조커는 다양한 해석이 되는 영화이지만 뉴스의 기사가 상징하는 바는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는 듯 합니다.
'시내에 나가봐야 쓰레기와 쥐들뿐(조커분장의 시위대들뿐)이에요.
쓰레기(시위대)때문에 사람들이 오질 않으니 망하게 생겼어요. 냄새도 그렇고 쳐다보기에도 역겨워요.
고급 주택가마저 빈민가처럼(토마스웨인도 아서처럼) 변했습니다.
라고 나오는데 이 짧은 오프닝 기사의 몇 단어를 은유해보면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유추해볼수있게 합니다.
또한 부유층과 빈민층의 대립이 고조되는 상황임을 인지할 수 있게 합니다.
뉴스에선 부유층의 입장만 대변한 기사만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이번 시장출마에 부자인 토마스웨인이 출마하고 당선될 것처럼 언론에 나옵니다.
간단 요약
극중 주인공인 아서는 빈민가에서 지내며 과대망상증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고있었습니다.
그의 꿈은 코미디언 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광대는 놓을수없는 꿈이였습니다.
어릴적부터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웃고싶지않아도 갑자기 큰 웃음이 나와 그를 난처한 상황으로 만들었죠.
아서는 아버지없이 어머니와 살았고 아버지에 대한 결핍이 있었습니다.
그의 결핍이 만들어낸 아버지는 상징적으로 총 3명입니다.
총을 건네주고 아들이라는 말을 꺼낸 전직장동료 랜들
코미디언이 꿈이였던 아서가 동경하는 코미디 토크쇼진행자인 머레이
아서의 어머니가 아버지라고 말했던 정치인 토마스웨인
아서의 직장동료인 랜들은 아서가 폭행을 당했을때 총을 건네주었습니다.
총을 건네주고 난 뒤 나중엔 돈을 요구합니다.
아서가 아동병동에서 광대분장을하고 연극중에 총을 떨어뜨리게 되고 난감한 상황에 빠지죠.
이때 랜들은 아서의 상사에게 아서가 자기에게 총을 사려고했다고 말하고 아서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해고당하게됩니다.
해고 당하고 돌아가던 지하철에서 아서는 의지와는 다르게 크게 웃게되고 3명의 은행원에게 뭐가 웃기냐며 조롱을 당하고 폭행당합니다.결국 아서는 분노를 이기지못하고 총을 쏴 그들을 죽이게 됩니다.
집단폭행을 당하고도 참았던 아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분노를 참지않게됩니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않고 자신이 하고싶었던 말을 모두 하게 됩니다.
자신이 아동학대까지 당했던 입양아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의 분노는 극에 달합니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되고 어머니를 죽이게 됩니다.
지하철 총살사건으로 조사받게된 랜들은 아서를 찾아가게 되고 아서에게 아들로 생각한다는 식의 소리를 다시한번 하게되며 아서의 분노를 폭발하게 만듭니다. 결국 아서는 총을 주었던 랜들까지 죽이게 됩니다.
그는 개그맨이 꿈이었던 만큼 스탠딩코미디쇼에도 나가보지만 사람들을 웃게하지는 못합니다.
또한 이 때문에 머레이쇼에서 공개적인 조롱까지 당합니다.
이사는 자신이 즐겨보고 동경하던 머레이의 쇼에 초대받게 됩니다.
하지만 아서의 우상이던 그는 쇼에서 아서를 조롱하고 아서는 분노합니다.
아서의 입장에선 자신이 유일하게 마음을 주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것 그 이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머레이의 머리에 총을 쏘고 이는 방송에 송출됩니다.
원래 아서는 머레이쇼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게 목적이였으나, ' 내 죽음이 내 삶보다 더 가치 있기를,' 라는 말로 인해 마음을 바꾼 듯 합니다.
아서는 머레이의 살인으로 경찰로 이송되던 중에 조커의 추종 시위대에 의해 탈출하게됩니다.
아서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토마스웨인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짐작했고 토마스웨인은 그를 부정했죠?
웨인이 아서의 아버지라는 건 어머니의 망상일 확률이 높다고합니다.
아서의 머레이살해로 인해 생긴 광대 시위대에 의해 토마스웨인은 살해되게 됩니다.
근데 살해장면 또한 아서의 망상인지 실제인지에 해석이 갈립니다.
사회적 이슈를 다룬 조커
조커 아서는 갈수록 세상이 미쳐간다며 말합니다.
양극화가 극심해져가고 빈곤층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으로 소외계층들이 제2,제3의 조커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졌습니다. 조커의 흥행으로 모방범죄가 일어날까 긴장했었죠.
조커를 탓하기 전에 왜 조커가 되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모두 조커와 같은 상황을 겪었다고 해서 같은 선택을 하진 않을 것이지만 말입니다.
조커는 감독이 다방면으로 해석이 가능하게 열어두었기때문에 다양한 해석을 하게 됩니다.
무거운 사회의 문제를 가볍게 희화화하려고했지만 여전히 무겁게 느껴지긴했습니다.
이유가 어떻게 됐든간에 살인을 정당화 시킬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극을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주변에 소외된 사람을 챙길 수 있도록 주위를 보살펴야겠습니다.